The Baekj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Asan Region Based on Literary Records and Archaeological Evidence
Year: 2025
Type: article
Abstract: 본 연구는 문헌 기록과 고고 자료를 종합하여 아산 지역의 백제사적 위상을 한성기와 웅진∙사비기로 구분해 검토한 것이다. 최근 발굴조사와 연구 성과에 따르면, 아산 지역의 마한 문화는 탕정∙배방 지역을 중심으로 3세기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백제는 4세기대 아산 지역에 진출하여 기존 마한 문화에 기반하고 있는 재지사회의 거점지였던 탕정∙배방 지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면서 대두성∙탕정성을 축조하고 영인면∙곡교천 이남의 아산 시내 권역을 직할지로 편입하였다. 그 후 탕정성을 거점으로 천안 및 태안반도 일대의 지방 유력 세력과 정치적 관계를 맺으면서 교류하였고, 그 외 지역에서는 점진적으로 국가권력을 확산시켜 나갔다. 그 결과 대두성∙탕정성은 당대 백제인들에게 영역 확장 및 국가권력 확산의 주요 거점으로 인식되었고, 4세기 후반 『서기』편찬 과정에서 백제 초기 역사의 중요한 거점성으로서 정리∙기록된 것으로 여겨진다. 웅진∙사비기에 아산 지역은 북방 방어선의 핵심 거점으로 기능하였다. 475년 웅진 천도 이후 아산 지역은 수도 방위를 위한 북경(北境)의 전략적 요충지로 재편되었으며, 대두산성 수리와 한북 민호 사민은 고구려와의 대치 상황에서 방어력 강화를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5세기 후반 이후 아산 지역과 관련된 문헌 기록은 더 이상 확인되지 않지만, 이 일대는 고구려와의 군사적 대치 전선에서 최전방 방어 거점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방∙군∙성 지방통치구조 하에서 탕정군∙아술성∙굴직성으로 편제된 사비기에도 아산 일대는 신라와 영역을 맞댄 최전방 지역이었는데, 『삼국사기』 소나 열전에 보이는 백제와 신라의 분쟁은 아산시 영인면∙천안시∙직산읍 방면에서 벌어진 국지전으로 이해된다.
Source: 한국학논집
Author: Jong-uk Park
Language: English
Subfield: Archeology
Field: Arts and Humanities
Domain: Social Sciences
Open Access status: diamond
OpenAlex ID: W7119468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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